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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17에는 없는 소중한 것들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Mar 24 2025 12:37 PM
봉준호 감독의 공상과학(SF) 영화 '미키 17'을 보려니 망설여진 건 네이버의 네티즌 평점이 7.46에 불과해서였다. 인용이 곤란한 악평에 별점 1, 2점이 이어졌다. 이게 사실일까? 그는 6년 전 '기생충'으로 아카데미상들과 황금종려상까지 받지 않았는가? 그리고 1억1,800만 달러나 들여 만든 영화가 이럴 리가?
알려진 줄거리는 인생 막장까지 간 미래의 청년 미키가 자기 신체를 '리프린트'하게 해서 '극한직업'을 하다가 죽으면 다시 살아나고, 두뇌에서 추출한 기억도 이어받아 17번째 미키가 됐는데 무슨 일인가로 18번째 미키와 만난다는 것이다.
10일 서울의 한 영화관에 걸린 '미키 17' 홍보물. 연합뉴스
나는 이 영화를 보기 전에 SF 영화의 고전이 된 비슷한 작품들을 떠올려 보았다. 당연히 세계 최초의 인조인간 이야기인 '프랑켄슈타인'이 가장 먼저다. 여러 번 만들어진 이 영화의 원작은 메리 셸리라는 천재가 스물한 살 때 쓴 소설인데 제목 아래 제사(題詞)로 쓰인 '실낙원'의 한 구절이 이야기의 '심장'이다. "주여, 저를 흙으로 빚어 인간으로 만들라고 제가 간청했습니까? 어둠에서 끌어내 달라고 제가 애원이라도 했나요?" "당신에게 인조인간을 만들 기술이 있다고 세상에 없던 나를 만들어서 괴물로 살아가게 하다니" 하는 괴물의 분노는 '창조주'인 빅터 프랑켄슈타인에 대해 감사 대신 복수를 하게 한다. 아이러니하다.
기억의 이식과 '나란 누구인가?' 하는 정체성에 대한 영화로는 '토탈 리콜'을 빼놓을 수 없다. 역시 천재 작가인 필립 K. 딕의 원작으로 만든 이 영화는 잠만 자면 화성에서 이상한 여자와 사는 모습을 보는 채석장 인부 퀘이드의 이야기다. 그는 화성으로 가고 싶지만 돈이 없어 여행사로 가서 화성에서 산 것처럼 기억을 주입받는다. 하지만 무슨 일인가로 자기가 사실은 화성에서 살며 독재자에게 반기를 든 하우저라는 사람인데 기억이 조작됐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나중에는 이 기억마저 주입된 것을 알게 된다. 장자가 나비의 꿈을 꾸고는 "아, 내가 나비 꿈을 꾸는 것인가? 나비가 내 꿈을 꾸는 것인가?" 하고 말한 탄식이나 '리어왕'에 나오는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하는 한탄이 이 영화에도 나온다. 퀘이드는 사실은 자기를 감시해온 부인의 실체를 알고는 "내가 내가 아니라면 대체 누구란 말인가?" 하고 한탄한다. 인류의 오래된 질문이다.
영화 토탈 리콜(Total Recall, 1989)의 한 장면. 한국일보 자료사진
SF 영화의 최고봉은 역시 필립 K. 딕 원작의 '블레이드 러너'인데 인간이 만들고 유통기한 4년이 지나면 죽는 인조인간 리플리컨트가 나온다. 반란에 나선 리플리컨트를 죽이는 부대원들이 블레이드 러너이다. 인간과 비슷하다 못해 오히려 더 뛰어난 리플리컨트에게 인생이란 무엇인가? 버림받은 리플리컨트들을 이끄는 군인 리플리컨트인 로이는 죽기 전에 인간 블레이드 러너에게 비감하게 말한다. "나는 너희 인간들이 상상도 못할 것을 보았어. 오리온의 어깨에 불을 붙인 전투선에도 타보았지. 탄호이저 게이트 근처의 바다에서 물빛이 춤추는 것도 보았어. 이제 그 모든 순간들이 시간 속에 사라질 거야. 빗속의 눈물처럼. 이제 죽을 시간이야." 경험은 소중하다. 하지만 소박한 인생도 좋으니 살아가는 느낌이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객석에서 본 '미키 17'에는 이런 철학이 없었다.
권기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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