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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 '통일정책'은 있는가?
70여 년간 '구호'로서만 존재
- 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editorial@koreatimes.net)
- Oct 07 2024 02:17 PM
편지 교환·이산가족 방문·언론인 파견 시급
황순일(전 언론인·토론토)
2015년 10월20일 금강산면회소에서 열린 제20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중 남측 민호식(84) 할아버지가 북측에서 온 여동생 민은식(81) 할머니와 얼싸 안고 오열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남북통일을 외쳐온 임종석 전 문 대통령비서실장(2017~19년)이 최근 ‘한반도 2 국가론’을 주장, 남한 정계가 설전을 벌이고 있다. 헌법 위배라는 주장도 나오며 정치인들은 통일문제서도 여전히 포용성이 없다. [주: 임실장은 민주당 소속, 남북 정상회담 준비 및 북한과의 협력정책 추진을 주도했다]
서독은 할슈타인 원칙을 내세워 동독을 주권국가로 인정하지 않았으나, 72년 12월 체결된 ‘독일연방공화국과 독일민주공화국간의 관계에 관한 기본조약’에 따라 두 나라는 동·서독 경계선을 인정했다. 나라가 갈린 지 17년 만이다.
이로써 독일에는 두 주권국가가 존재, ‘1민족 2국가론’이 실현되었다. 본(Bonn)과 동부 베를린에 ‘대표부’를 두고, 대사가 아닌 대표가 상주했고 동·서독은 유엔에 동시 가입했다. 동시에 인도주의적, 경제적 교류가 급속도로 진전, 1년에 600만 명이 왕래했다.
동독시민이 서독으로 넘어갈 때 ‘연방공화국’ 시민 취급을 받았다. 서독은 동독에서 수입되는 물품에 수입세를 부과하지 않았다. 우편물은 국내우편으로 취급, 국내우표를 붙이면 배달되지 않는 곳이 없었다.
서독 언론인은 동독에서 취재한 기사를 자유롭게 서독 본사에 보냈다. 동독 사람들은 서독 언론, 특히 TV를 통해서 동독 사정을 알았다. 한국일보 기자가 평양에서 기사를 보내고, 공산당 기관지 로동신문 특파원이 서울에 상주하는 셈이며 북한인들은 한국일보를 통해 북한 소식을 접하는 식이다.
서독인은 자가용을 운전해서 동독을 방문, 동독 거주 친척을 만났다. 서울에서 자가용을 타고, 휴전선을 건너 평양이나 청진에 가서 조카를 만나는 격이다.
우방이고 적국을 불문, 독일의 통일을 찬성하는 국가는 없었다. 서독인들조차 통일은 불가능하다고 인정했다.
동·서독간의 긴장 완화와 상호협력에 적극적이던 동독 공산당 제1서기(정부 수반) ‘에리히 호네카’는 1984년 본을 방문하겠다고 선언했다가 소련정부 기관지 ‘프라우다’의 일격으로 서둘러 취소했다. 소련의 입김은 그만큼 컸다. 5년 후인 1989년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고 통일이 됐다. 그러나 이것은 30여 년간의 교류 끝이었지 어느 날 갑자기 통일된 것은 아니다.
남한과 북한은 무슨 철천지 원수라고 70년간 인간교류는 물론 우편물조차 교환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지구상에서 북한에 편지를 보낼 수 없는 유일한 국가가 남한이다.
캐나다에선 북한의 주소를 명기하고, PYONGYANG, NORTH KOREA라고 쓰고, 캐나다에서 서울에 보내는 우편물에 붙이는 국제우표(2.71달러)를 붙이면 된다. 북한에 대한 자유세계의 제재로 송금은 불가능하다.
남북에 갈려서 사는 이산가족들은 가족이나 친척을 방문할 수도 없다. 물품 수입·수출도 안된다. 방송이나 텔레비전 시청? 숨어서 듣고 몰래 보다가 당국에 잡히면 본인뿐 아니라 온가족이 반동분자로 몰린다. 평양에 남한 특파원은 없고, 서울에 북한 특파원은 없다. 평양에 남한 대표부가 없고, 서울에 북한 대표부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통일을 기대하겠는가.
탈북자가 북한으로 돌아가겠다면서 버스를 몰고, 판문점으로 가다가 붙잡혔다. 그 탈북자를 북한으로 돌려보내면 자유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은 올라갈 것이다. 그만한 관용과 인권존중 원칙을 보일 수 있을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평통)는 통일에 관한 ‘건의’나 ‘제안’을 수렴, 정부에 전달하기 위해 조직됐다. 그러나 창설 이래 단 1개의 의사라도 전했다는 소식을 들은 기억이 없다.
‘통일’은 지난 70여 년간 구호에 불과했다. 통일정책은 없었다. 남북한은 우편물 교환과 이산가족 상호 방문 같은 쉬운 것부터 하나씩 성사시켜야 하지 않을까. 1947년 월남한 6세 소년이 83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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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editorial@koreatimes.net)